top of page

<PRIMARY STRUCTURES>:1966 + 정홍식 개인전 리뷰

<PRIMARY STRUCTURES>:1966

+

정홍식 개인전 리뷰

<REROLL> 2017.10.14-11.05

정홍식의 studio148에서의 개인전<Reroll> 전시 서문에(by 송윤지)- “Minimalism Object”관련 내용이 있어 미니멀리즘 조각에서 역사적으로 대표되는 전시인 <Primary Structures>와 함께 읽어 내려가 보면 좋을 것 같아 관련 글을 공유합니다. 번역본은 본인이 읽어볼 수 있을 정도의 한글 번역을 한 것으로 읽어 보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메일주세요.(rainbianni@gmail.com)

<PRIMARY STRUCTURES>: 1966 April 27 – June 12, 1966

서문 『The sculptors represented in this exhibition are not consciously allied in a school or in a specific movement, but they do share a stylistic tendency by reason of their interest in “primary” artistic structure. The sculpture is often architectonic, if not architectural. Most of the work does not use base or pedestal, some are oriented to the walls, and some even to the ceiling. The artist feels free to utilize and activate the space of a room or the outdoors according to the internal necessities of the work. 이 전시에서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조각가 들은 학교나 특정한 움직임-운동 같은 것을 의식해서 연합된 것은 아니지만, “primary”(1. 주된, 주요한; 기본적인_2.(순서·단계상으로)최초의)한 예술적 구조물에 대한 그들의 관심으로 인해 어떤 하나의 양식-경향을 공유한다. 이 조각은 종종 건축학적인 것까진 아니더라도 건축양식적이다 라고 한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바닥판이나 받침대를(대좌-좌대) 사용하지 않았다. 어떤 작업들은 벽 쪽으로 맞춰 위치되고, 어떤 것은 심지어 천장까지 이어진다. 참여 예술가들은 그 작업 내부의 필수요소들(the internal necessities of the work)에 따라 마음 놓고 자유롭게 방이나 실외 공간을 활성화시키고 활용한다. The generally large scale of the work and its architectural proportions allow the sculpture to dominate the environment. At times the sculpture intrudes aggressively on the spectator’s space, or the spectator is drawn into sculptural space. Often the structure acts ambiguously, creating a spatial dislocation for the spectator with complex meanings. 작업의 전반적으로 큰 규모와 그것의 건축적 비율들로 하여금 그 조각들이 주변 환경을 지배할 수 있게 해 준다. 때로는 그 조각이 공격적으로 관객의 공간에 침범하거나, 관객이 조각적 공간으로 끌려들어가게된다. 종종 그 구조물은 관객들에게 복잡한 의미들과 함께 공간적인 탈구(dislocation)를 만들어내며 모호하게(ambiguously) 작용하기도 한다. These structures are also conceived as “objects,” abstract, directly experienced, highly simplified and self-contained. There is no overt surrealistic content and the anthropomorphic is rejected. Shape, color and material have a physical concreteness and unity. Generally, bright and vibrant color is in evidence, and when color is not applied, the intrinsic color of the sculptural material asserts itself. The new sculpture rejects patina and embellishment; color acts like a skin on a surface which is always smooth and never worked by hand or textured. 이러한 구조물들은 “오브젝트(objects)”로써 추상적이고,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그리고 매우 단순화되어있고 자기자족적(self-contained)이다. 여기에 어떤 명백한 초현실주의적 내용은 없고 의인화 또한 거부된다. 형체, 색깔 그리고 소재(material)는 물질적인 명확함과 통합성(unity)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밝고 선명한 색은 명증하게(in evidence) 보여 진다. 그리고 색깔이 적용되지 않을 때는, 그 조각적 질료(material)의 고유 색상이 그 자신임을 증명한다. 이 새로운 조각은 녹청(고색)과 장식을 거부한다. 따라서 색깔은, 절대 손길이나 질감이 드러나게 작업을 하지 않아 항상 부드러운 표면의 피부같이 작용한다. The sculpture has benefited from modern technology and industry. The artist can now conceive his work, and entrust its execution to a manufacturer whose precision and skill conveys the standardized “impersonality” that he may seek. Plastics, fibreglass, aluminum, fluorescent light have allowed the sculptor to formulate ideas and create dramatic visual effects that at any other time would have been impossible; as one artist has put it: “We are about to redesign the world.” 이 조각은 근대 기술과 산업으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작가는 이제 그의 작업을 구상할 수 있으며, 그것의 실행을 정밀함과 숙련도를 갖춘 전문 제작 업자에게 맡길 수 있고 그것은 곧 작가가 찾고자하는 표준화한 “몰개성(impersonality)”을 갖는다. 플라스틱, 섬유유리, 알루미늄, 형광등으로 하여금 조각가가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과거의)그 어느 시대에서도 불가능했을 드라마틱한 시각효과를 만들어준다.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다시 디자인하려한다.” All of the sculptors in this exhibition share an uncompromising seriousness and open spirit of inquiry. The gesture behind their art is perhaps one of its most important aspects. They are anxious to find out what sculpture is and to discover how to make it. The new sculptors are transforming contemporary esthetics, many in response to the new world shaped by Space, Science, and Technology. Their work demands our attention and active participation. 이 전시의 모든 조각가들은 타협하지 않는 진지함과 탐구에의 열린 정신을 공유한다. 그들의 이런 예술이면의 표현태도(gesture)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측면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조각인지 찾아내고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발견하길 열망한다. 이 새로운 조각가들은 우주, 과학 그리고 기술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현대 미학을 바꿔놓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우리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Kynaston McShine Curator of Painting and Sculpture』

(키나스턴 맥샤인. 1935년 생. 참고; 198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An international survey of painting and sculpture>에는 169명의 작가들이 초대되었는데 그 중 13명만이 여성작가였다. 이를 두고 당시 모마 큐레이터인 맥샤인은 “이 전시에 포함되지 못한 아티스트는 ‘그의(his)’ 커리어를 재고해봐야한다(any artist who wasn't in this show should rethink his career.)”는 말을해 여성아티스트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모마앞에 모여든다. 이 시위는 ‘게릴라 걸즈’이 전신이 되었다한다. (-http://magazine.jungle.co.kr/cat_magazine_special/detail_view.asp?master_idx=16713&pagenum=1&temptype=5&page=1&code=&menu_idx=152&main_menu_idx=2&sub_menu_idx=26&all_flag=1)(-http://articles.latimes.com/1992-01-19/entertainment/ca-799_1_guerrilla-girl))

CARL ANDRE

RICHARD ARTSCHWAGER

RONALD BLADEN

ANTHONY CARO

WALTER DE MARIA

DAN FLAVIN

PAUL FRAZIER

DANIEL GORSKI

ROBERT GROSVENOR

DOUGLAS HUEBLER

ELLSWORTH KELLY

LYMAN KIPP

SOL LEWITT

TINA MATKOVIC

FORREST MYERS

PETER PINCHBECK

TIM SCOTT

ROBERT SMITHSON

ANNE TRUITT

RICHARD VAN BUREN

ISAAC WITKIN

DAVID ANNESLEY

LARRY BELL

MICHAEL BOLUS

TONY DE LAP

TOM DOYLE

PETER FORAKIS

JUDY GEROWITZ

DAVID GRAY

DAVID HALL

DONALD JUDD

PHILLIP KING

GERALD LAING

JOHN MCCRACKEN

ROBERT MORRIS

PETER PHILLIPS

SALVATORE ROMANO

ANTHONY SMITH

MICHAEL TODD

WILLIAM TUCKER

DAVID VON SCHLEGELL

DERRICK WOODHAM

(+ <OTHER PRIMARY STRUCTURES>:2014, March 14 - August 3)

함께보면 좋은 참고서적(김윤경선생님 블로그에서 펌)

마이클 프리드, "미술과 사물성", 이영철 외(편역),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시각과언어, 1995, 161-185. Fried.pdf

핼 포스터, "미니멀리즘의 난점", 이영철 외(편역),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시각과언어, 1995, 269-300.

강태희, "미니멀리즘, 1967", 현대미술의 문맥읽기, 미진사, 1995, 126-149.

로잘린드 크라우스, "3. 레디메이드의 형식", 현대조각의 흐름, 윤난지(역), 예경, 1997, 91-130.

로잘린드 크라우스, "7. 이중 부정", 현대조각의 흐름, 윤난지(역), 예경, 1997, 287-337.

➤ 전시 의의 <PRIMARY STRUCTURES>:1966

1966년 뉴욕에 있는 유태인 미술관(the Jewish Museum in New York)에서 열렸던 프라이마리 스트럭처(Primary Structures) 전시. <Primary Structure>는 1966년에 미니멀아트에 대해 역사적 교두보를 연 전시이다.

이 전시와 더불어서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 해야 될 것은 “오브제”와 “레디메이드”에 대한 논의이다. 그 이야길 하다보면 결국엔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가지고 있는 입장과 그리고 60년대의 미니멀아트가 등장했을 때 그 미니멀아트를 비예술-미술이 아닌 것으로 평가했었던 모더니스트 들의 입장을 살펴보게 된다. 다시말하면 뒤샹같은 경우엔 자기 스스로를 예술에 반하는 반예술이라 주장했다. 이를 안티아트, 안티에스테틱(esthetics 미학)-반미술, 반미학-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60년대에 이렇게 등장하는 미니멀아트와 같은 새로운 예술에 대해서 예술이 아니다(Non Art 비예술) 하는 태도와 함께 그들이 갖는 차이점을 살펴보도록 한다. 그리고 미니멀에서 우리가 포스트모던적인 징후를 찾아서 어떻게 공고하게 모더니즘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전복시킬 여지를 갖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한편, 2014년에 <Other Primary Structures>라는 동일한 미술관에서의 오마주 전시를 하게된다. 그 오마주 전시와 연동된 사이트를 오픈했고 참고해서 보면 좋겠다. 프라이마리 스트럭처 전시에서 나왔던 전시 카탈로그가 2014년 전시와 1966년 전시를 두개의 카탈로그로 만들어 같이 붙여서 다시 재 출판이 되었다.

1966년에 열렸던 프라이마리 스트럭처 전시 도록의 표지를 보면 “Primary Structures”의 ‘P’ 와 ’S’의 알파벳을 가지고 디자인 하였다. 전시의 부제는 <Primary Structures: Younger American and British Sculptors>, 즉 ‘미국과 영국의 젊은 조각가’ 이며 큐레이터 키나스턴 맥샤인(Kynaston McShine)이 당시에 ‘뉴아트(New art)’라고 불릴수있는 것들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큐레이터 맥샤인이 ‘뉴아트’라고 규정하여 추천한 일군의 작가들의 작업을 그 당시에 지칭했던 용어로는 "ABC art," "reductive art", “Minimalism”이 있다. 미니멀아트는 미니멀이란것의 뜻에서 ‘최소한의 예술’이라고 흔히 알고있다. ‘ABC아트’든 ‘프라이마리 스트럭처’이든 결국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축소되고 환원된(reductive) 형태를 가지고 있는 예술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작가들은 ‘작가’라는 개념,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작가’라는 개념과는 조금 상회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라고 하면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할때 나오지만, 근대 이후 ‘아티스트’라는 개념은 거의 ‘창조주’의 위상을 갖는 정도로까지 위치가 격상된다. 아티스트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독창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아티스트라고 했다. 아티스트가 크리에이터가 되는것, 고대 그리스(희랍어)의 어원(Techne-ars(라틴어)-art)에 두고있는 ‘아트’라는 것이 고대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근대에 이르게 되었을 때까지 살펴보면, 물리적인 차원에서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작가가 자기 손으로 만들거나 변형시켜서 무언가를 재장초하는 모든 행위들이 아트의 어원인 테크네의 산물로 우리가 범주화 할 수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을 모두다 테크네의 영역에서 볼수있는데, 그 인공물 중에서도 특별한 퀄리티를 가지며 특별한 기준에 의해 생성되는 것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범주화 해내고 분류화해내는 과정들이 근대에 일어나는 사건이 된다. 그러면서 근대에는 예술이라는 것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 건가 어떤 범주를 우리가 예술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사물들과는 달리 어떤 것을 예술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것들이 결국에는 아티스트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들에 대한 담론-논의들이 만들어지게된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는 1966년의 이 전시에 등장하는 예술작업들 그리고 여기에 참가했던 작가들의 경우에는 일단은 메이커-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메이커-까진 아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예술가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디자이너로서의 예술가 개념이라는 것은 자기손으로 직접 예술작품을 완성하거나 만들지않아도 되는 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하면, 작가가 자기손으로 모든 것을 완성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지에 대한 계획을 하고 그것을 구상을 하고 그리고 그 구상되고 계획된 것들이 다른사람의 손에 의해서 완성되는 과정까지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게 디자이너 개념이 이야기하고 있는 범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미니멀아트에 대해서 이야기할때는 그것을 우리가 지칭할 때 아트워크 예술작품(art work) 이라고 얘길하기보다 오브제(objet, objec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오브제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미니멀 아트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이자 이론가인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뭐라고 하냐면 자신의 작업을 ‘스페시픽 오브제(specific objects)’라고 이야기 한다. ‘특정한 오브제’, ‘특수한 물건’. 우리가 살면서 보는 일상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오브제이고 그외의 예술의 범주에서 보는 조각이나 회화 등을 예술이라고 분류하는 것인데, 저드가 스페시픽 오브제라고 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그 예술의 범주에 있는 것들이 아주 형태가 축소가 되어서 더 이상 어떤 내용이라던지 그 상징이라든지 이런 모든 것들을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형태가 기본적인 것으로 환원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 물체에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그것의 크기가 얼마인지 혹은 재료가 무엇인지 ‘물성’이라고 하는 것들로 구분이 될 수 있는 정도로까지 물체가 환원이 된 상태를 ‘스페시픽 오브제’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런 지점들에서 미니멀아트의 범주를 설명하고 총칭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을 했다.

그렇게 미니멀아트에대한 논의들이 시작을 하게 되고, 이런 미니멀아트에 대한 논의는 어찌보면 모더니즘에서 이어진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게 한다.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미니멀아트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모더니즘은 미니멀아트로 귀결될 수 밖에없다’ 라고 할수있다. 당시 모더니즘의 이론가들은 미니멀아트를 예술이 아닌 것-비예술이라고 했다. 미니멀을 비예술이라고 비판한 대표 이론가는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이다. 그의 "미술과 사물성 Art and Objecthood" 이란 글에서 ‘오브젝트물체성-물질성(objecthood)’과 ‘미술(art)’이 어떻게 구분이 되는가 말한다. 미니멀아트의 사물성이란 것은 작품이 물체와 사물에 지나지않아 ‘art’가 아니고 이것은 ‘objecthood’이다 라고 비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모더니즘이 처해있었던 한계를 타계하는 이론의 확장이 이뤄져 또다른 물꼬를 터주게 된다. 프리드가 비판했던 그 지점에서 출발해서 당시 60년대 70년대로 넘어가는 때에 등장했었던 새로운 미술들(마이클프리드 보다 과거로 가자, 확고하게 모더니스트의 사고를 가지고있었던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 확실히 예술일 수 없는 것들이 등장하는 60년대 후반의 미술들에 해당한다)이 결국에는 모더니즘이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하고 한계에 다다르고 죽음의 선고를 받게될 단계에서 예술적으로 길을 펴주고 부활시켜줄 여지를 남긴것이다. 프리드의 논지에서 그 확장시킬 수 있는 요인을 찾아 이끌어낸 사람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이다. 크라우스는 프리드의 비평점을 역설적으로 끌어와 70년대에 자신의 이론을 더 확장시켜나간다. 마이클프리드가 미니멀 아트를 비판했었던 때는 1967년이다. 프라이마리 스트럭처 전시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새로운 아트-뉴아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는 이 상황에 대해 모더니스트였던 프리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입장을 전복시켜 미니멀아트가 계속해서 확장되어가는 과정에서 67년을 기점으로 포스트 미니멀로 넘어가는 지점들이 등장하게 된다. 67년이후 70년대에 이르는 그 시기의 미술들을 모더니스트들은 미술이 아니라 얘기했지만 실제로 이런 예술과 활동실천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었고 수많은 새로운 예술실천들을 계속해서 예술이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식인지, 아니면 이것을 예술이라고 보고 이것이 어떻게 예술이 될수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 옳은방식이 아닐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되고 크라우스는 후자를 택했던 것이다.

크라우스가 주목하게되는 지점들은 대지예술이나 포스트미니멀이 나타난 지점에서 포스트미니멀작가들과 대지미술작가들의 그 실천들이 어떻게 여전히 예술의 범주에 머무를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예술의 범주가 된다면 우리가 여태껏 알고있었던 예술은 더 확장된 예술의 영역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라우스의 논문중 하나가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tended Field)”이다. 과거 조각이 단순하게 3차원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덩어리로 규정을 했었다면 그것이 대지미술이라던지 더 나아가서 퍼포먼스에 이르기 까지 그 범주가 어떻게 연장될 수 있는 것인가 말하고 있다. 미니멀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오브제-레디메이드라는 예술이 아니었던 것들을 비예술에서 예술의 범주로 포함시키는 논의가 60년대 후반 포스트모던의 담론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컨텍스트에 대한 문제이다. 어떤 것을 예술이라고 보느냐 예술이라고 보지 않느냐는 예술이 선천적으로 태어날때부터 예술임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A라는 대상에 대해서 그것을 예술로 봐주는 사람들의 컨텍스트안에서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동일한 존재라 하더라도 이것을 둘러싸고있는 컨텍스트가 이것을 예술이 아니라고 하면 예술이 아닐 수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그 지점들 그러니까 결국에는 모든것이 다 예술이 될 수 있고 또 모든 것이 다 예술이 아닐수있는 지점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게되고 60년대 후반에 미니멀리즘과 맞닿는 논의들 중에 하나가 된다. 그렇게 ‘저자의 죽음(“La mort de l’auteur”- R. Barthes)과 독자의 탄생’이 맞물리게 되는 지점이 등장하게되고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심이 되는 논의 지점이 된다. 이 모든 것은 프라이마리 스트럭처 전시가 대규모로 기획되어 보여주었기때문에 마이클 프리드와 같은 아주 극렬한 비판을 하는 비평가의 입장이 나오고 그와 더불어 하나의 기점이 되는 시대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이 프라이마리 스트럭처 전시가 갖는 의미이다. (끝)

➤ 전시 리뷰 <REROLL>:Jeong HongSik-1st Solo Exhibition Oct 14 - Nov 5, 2017

(작품제목)

overall 종합적인 전체의 전부

obverse -의 반대, 앞면

temporary assembly 가조립

half side 반쪽

pile up 쌓이다

lidless 뚜껑이 없는

inclined sides(thin) 한쪽으로 기운) 빗면들얇은

inclined sides(thick) 한쪽으로 기운)빗면들 두꺼운

put down, put on 내려놓고 걸쳐놓은

half quarter spin 반 사분의일 돌려놓은 회전

lean against wall 벽에 기대어 놓은

다 이상태만을 얘기한다 내용이 아니고

뭔가를 예정하는 지시하는 상태 동작에 가까운

into action

리뷰제목 'Set into Surface'

정홍식의 작업은 "789"(87년생 정홍식, 88년생 오은과 정재용, 89년생 최중호가 2015년 11월 결성한 그룹)의 "정신과 시간의 방"(2015년 4월1일에서 2016년 4월1일까지 운영된 전시 공간)활동부터 기록한다.

개인전 이전의 작업

<The White(HG-0079)> 300x190x70mm gundam color, "MAX" painting on pla plate panel 2015

<The White(HG-0087)> 310x190x80mm gundam color, "MAX" painting on pla plate panel 2015

<The White(HG-0088)> 301x200x90mm gundam color, "MAX" painting on pla plate panel 2015

<Artmon manual#1> 750x400mm UV print on paper 2015

<Artmon manual#2> 750x400mm UV print on paper 2015

<Artmon manual#3> 750x400mm UV print on paper 2015

<The Green(HG-MS-05B)> 280x190x60mm "MAX" painting on acrylbox 2015

<The Black(HG-MS-05B)> 280x190x60mm "MAX" painting on acrylbox 2015

<The Green(HG-MS-06)> 280x190x60mm "MAX" painting on acrylbox 2015

<The Red(HG-MS-06S)> 280x190x60mm "MAX" painting on acrylbox 2015

<The Blue(HG-MS-07B)> 50x190x55mm "MAX" painting on acrylbox 2015

<The Red(HG-MS-06S)sg> 280x190x60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HG-MSM-07S)sg> 250x190x50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HG-MS-14S)sg> 310x190x75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HG-MSN-02)sg> 310x200x100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Green Figure(HG-MS-05B)m> 127x65x43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Black Figure(HG-MS-05B)m> 135x65x43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Green Figure(HG-MS-06)m> 127x71x43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Blue Figure(HG-MS-07B)m> 140x72x43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 Figure(HG-MS-06S)m> 135x71x43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 Figure(HG-MSM-07S)m> 127x96x52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 Figure(HG-MS-14S)m> 147x98x55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The Red Figure(HG-MSN-02)m> 127x109x102mm gundam color spray on pla plate panel 2015

<79.E02.00:19:00> 297x420mm gundam color spray on woodpanel 2015

<79.E29.00:17:31> 297x420mm gundam color spray on woodpanel 2015

<79.E43.00:05:18> 297x420mm gundam color spray on woodpanel 2015

<Artmon manual#4> 750x400mm UV print on paper 2015

<Artmon manual#5> 750x400mm UV print on paper 2015

<Artmon manual#6> 750x400mm UV print on paper 2015

<Column7> 2300x444x56mm wood,digital print 2015

<Horn Dril> 727x1168mm water-based enamel and acrylic spray on woodpanel 2015

<Guillotine> 727x1168mm water-based enamel and acrylic spray on woodpanel 2015

<Fissure> 727x1168mm water-based enamel and acrylic spray on woodpanel 2015

<RX-78-2> Mega Size wood Scratch Build 2013-2015

<Whiteboard Ending 1200x1800mm boardmarker on whiteboard 2015

<Legacy of the void> size variable a miscellaneous collection of dad 2015

<Freshly Drawn Water> size variable dehumidifying agents 2015

<Zinnia> A4 size(25ea) filter on screenshot 2015

<Door 1/4> 515x490mm frottage 2015

<The Finger of God> 600x800x210mm polyester, acrylic-2014 repaint-2015

<Golden Cross> 500x500mm pastel on wood panel 2015

<L_S-1> 335x244mm oil pastel on wood panel 2015

<L_S-1> 335x244mm oil pastel on wood panel 2015

<Test01> 335x244mm paint spray on wood panel 2015

<Leftovers_Her favor>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Avenge the death>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ex_With cotton>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Journey to jaburo>>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Reversed nightmare>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sd_Mode of transportation> 33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The death deity> 600x455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Failed mission>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Best equipment> 410x270mm acrylic spray on canvas 2015

<Leftovers_Shot down> 1168x803mm acrylic spray, canvas 2015

<Leftovers_Trick works> 727x1168mm acrylic spray, canvas 2015

<Leftovers_Return> 727x909mm acrylic spray, canvas 2015

<Multitype_vacuum_01> 1440x580x36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5

<Multitype_3 election ketties_01> 400x200x19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5

<Multitype_high pressure rice making pot_01> 500x280x36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5

<Leftovers_Torso> 450x30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Bishop> 600x50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Brave and beauty> 730x53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Multitype_vacuum filter_01> 150x200x20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Multitype_cassette and cd player> 250x230x20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Multitype_calf massager_01> 600x500x40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Leftovers_effectively ending> 727x50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electric fan_01> 350x300x69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less durable> 1300x90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without move> 1000x65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Multitype_refrigerator_01> 495x542x125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Multitype_electric light_01> 280x300x177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Leftovers_use the standard> 600x60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close-range escort> 240x33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Multitype_monitor_01> 450x400x20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Multitype_2 channel mini speaker set_01> 80x90x11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Leftovers_stream of bullets> 730x50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Leftovers_poor maneuverablility> 240x330mm acrylic spray, canvas 2016

<Multitype_vacuum_02> 80x130x43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Multitype_electric hair dryer_01> 70x130x430mm acrylic spray, mixed media 2016

정홍식의 작업 작동원리

레퍼런스가 되는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의 장면을 만든다. 예를 들어 79년작 '기동전사 건담'에 나오는 라스트슈팅장면-'아무로 레이'가 머리가 부숴진 건담에 타고 위로 총을 쏘는-을 공산품을 이용하여 작업한다. 건담의 일 년 전쟁에 나오는 어떤 것들, 장면들, 혹은 캐릭터들에서 색을 모아서 프라모델 도색하는 것처럼 도색한 작업들은 원래 작품에서의 내용이나 형태와는 상관이 없다. 프라모델을 스프레이 부스에 넣고 도료를 뿌리면 뒤에 있는 필터에 그림이 생기는 원리처럼 가전 제품을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뿌린다. 면전이 큰 것부터 작은 순으로 도색을 한다.

원작의 레퍼런스에서 색만 가져와 쓴다. 퍼스트건담 애니메이션은 79년도에 나왔고 정홍식은 87년생이니 원작이 변형된 상태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보게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니메이션이나 제품들의 디자인이 세련되게 바뀌거나 디테일이 올라가는 등 형태가 변형되는데 바뀌지 않고 남아있는 건 색이다. 그 색이 원작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색을 주로 가져와 작업한다.

작업의 사이즈는 해당하는 프라모델 상자 사이즈를 그대로 재현한다. <The White>시리즈의 경우 프라판으로 상자형태를 만들고 도장방식은 맥스 와타나베가 만든 '맥스 식 도장'방법으로 하였다. 맥스 식 도장방법이란 검은색을 전체에 다 뿌린 다음 흰색을 아주 미세하게 쌓아 올라가는 방식이다. 프라모델은 한 면이 아주 작기때문에 이 방법이 아니면 명암을 못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 방식은 90년대쯤에 유행하였고 그 방식을 그대로 썼다.

개인전에서는 캔버스 작품들만이 걸려져 있다. 프라모델 도장 안료를 그대로 캔버스에 뿌리면 캔버스 바닥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바탕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움직임이 생겨 표면이 깨지게 된다. 피규어를 비롯한 가전제품류는 단단한 표면이기에 깨지지 않아 프라모델 도색법으로 도료를 뿌려도 되지만 캔버스 바탕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대신 회화의 고전적인 도색 방식인 검은 바탕에 색을 쌓아올라가는 방법이나 현대 회화의 도색 방식을 이용해 캔버스 전면을 칠하였다. 이 둘은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한데, 표면이 상대적으로 광택이 나는 작업이 있다. 그것은 검은 바탕을 먼저 칠해준 후 색을 올린 것이다. 아닐경우 흰바탕을 칠해준다. 흰바탕은 유화물감 중에서 물감의 투명-불투명도 표식에 따라, 네모가 뚫려있는 물감은 밑색을 덮지 못하는 투명한 성질의 색이기에 흰바탕에서의 발색이 유리하다. 그런 재료적 특성을 고려해가며 캔버스 도색 작업을 한다.

캔버스를 프라모델 피규어처럼 다루거나 그 포장박스 자체를 표면으로 옯겨와 작업한다. 프라모델 형태는 극도로 단순해지고 색만 남는다. 작업이 피규어로 보이기 보단 피규어를 담은 투명한 박스가 된다. 담고 있는 피규어의 색만 투명한 박스상자 밖으로 스며나온다.

캔버스를 선택해서 작업을 할때 작업전의 설정이 중요하다. 그 선택기준은 작업전 조립형 파츠로 본다면, 맞닿아 조립되는 형태의 캔버스가 옆면이 칠이 되느냐 안되느냐 정해진다. 그게 작업의 내적 논리가 된다. 설치는 바닥에 눕혀놓거나 천장으로 부터 일정한 높이로 걸거나 벽에 기대거나 벽에 건다. 벽에 걸린 작업물은 벽에서 약간 띄워진 상태로 걸려져 있다.

설치 형식은 레퍼런스에 따라 놓여져 있고 작품 자체의 동기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기에 관객이 개입되어 발생하는 그 위치와 포즈에 따라 다른 기분을 내는 연극적 요소는 미미하다. 그래서 전시를 보았을때 그 규모면에서 나는 차라리 바퀴벌레가 되어 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면 더 재밌을것 같았다. 미술사에서의 미니멀리즘과 연결지은 전시문도 본인을 앤트맨 정도로 축소시킨다면 납득이 된다. 캔버스는 벽면으로부터 한 3cm정도만 띄워 걸어져있기 때문이다. 왜 모든 작업이 사각의 형태인지 물었을때 그건 다음 전시를 위한 인벤토리에 저장해놓고 있다 하였다.

도색을 왜 수공으로 하는지 의문이다. 에어스프레이로 뿌린다 한들 결코 붓으로 칠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 할 수 없고 단순한 면을 칠한다면 캔버스 자체를 프린팅하여 나무틀에 씌우는 방법이 있다. 파츠로 생각하여 안칠해진면과 칠해진 면을 구분한다 했을때에도 입체도형 전개도처럼 디자인하여 프린팅하면 된다. 프라모델이 갖는 도색의 의의를 그대로 따르고 싶다면 그것은 결코 미니멀한 방법은 아니다. 역시, 그것의 실행을 정밀함과 숙련도를 갖춘 전문 제작 업자에게 맡길 수 있다. 과연 작가가 찾고자하는 것이 표준화한 “몰개성(impersonality)” 인지 작가의 수행성을 근거로한 장인정신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프라모델 즉 피규어로서의 예술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품의 제목은 동작 상태만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 자체가 피규어가 될 수 없다. 내용과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오브젝트라고 말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비미술로 구분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도색방법을 보면 적극적으로 회화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조각적 회화? 캔버스의 옆면이 옆면이 갖는 의미로 존재하지만, 그것또한 플라스틱 모형의 조립판에서 아직 칼이나 가위로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둔 파츠의 형태와 다르지 않다. 뒷면이 없는 평면인 것이다.

“회화적 평면을 대하는 태도.” 애니메이션의 표면은 언제나 매끄럽다. 그림체가 달라질 뿐 표면은 항상 반들반들하며 프라모델도 원작에 따라 꺽이는 면들이 있을 뿐이지 그 표면만은 어떤 다른 질감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취미가들도 도색에 공을 많이 들인다. 전시된 모든 캔버스 표면도 매끄럽게 공들여 도색되어 있다. 형태의 재현은 없지만 색은 남아있다. 컬러가 없는 흑백티비시절의 애니메이션 이었더라면? 애초에 스크린톤으로만 제작된 흑백만화라면? 스크린톤으로 제작된 원본 만화는 매끄럽지 않다.

작품 자체에는 단순히 이것의 원전 캐릭터가 무엇인지 맞추어 보라는 장치가 없다. 그런 재현 욕구가 삭제되어 있다. 어떤 캐릭터를 형상화해서 만든것인지 맞추는게 목표가 아니다. 옆면을 칠한 작품도 정말 조립하길 의도하는건 아니다. 작품들은 상시 동작 상태로 공간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전시에 걸린 모든 작업물은 같은 결과를 갖고 있다. 마치 두 공을 하나는 연직 상방으로 하나는 연직 하방으로 던졌을때 지면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속력이 같은것과 같다. 작품은 무엇이 회화인지 찾아내고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발견하길 열망한다.


bottom of page